미중 반도체 경쟁 격화 속 한국 산업의 도전과 기회
최근 미·중 반도체 기업들이 최첨단 기술을 앞다투어 시장에 선보이며, 한국 반도체 산업은 커다란 도전 앞에 서 있다. 특히 중국의 리쉰커지(力訊科技)가 자체 설계한 6㎚ 공정 기반의 PC용 GPU를 공개하면서 기술 자립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따라 한국은 미중의 기술 패권 다툼 속에서 기술력 유지와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전략이 절실해지고 있다.
미중 반도체 패권 경쟁, 단순한 무역 분쟁을 넘어서
미국은 반도체 기술을 전략 산업으로 간주하며, 중국의 기술 굴기를 견제하기 위한 각종 수출 통제 및 제재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2022년 이후 미국은 첨단 반도체 장비와 기술의 대중국 수출을 제한했으며, ASML이나 일본 기업들까지 동참시키며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이에 대응해 중국은 기술 자립을 목표로 막대한 정부 보조금과 국영기업 중심의 육성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리쉰커지를 비롯한 중국 기업들이 선보인 6㎚ 공정 GPU는 아직 삼성전자나 TSMC의 3~4㎚ 기술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중국이 자체 설계 능력과 파운드리 생산 역량을 동시에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는 향후 중저가 시장을 중심으로 한 판도 변화 가능성을 시사하며, 한국 기업들에게는 기술 격차 유지에 대한 경고 신호로 작용한다.
한국 반도체 산업, 기술력 고도화와 인재 육성이 관건
현재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시스템 반도체나 파운드리 분야에서는 대만의 TSMC에 비해 뒤처져 있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AI·클라우드·전장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시스템 반도체 비중은 여전히 낮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선단 공정 기술(7㎚ 이하) 개발과 차세대 반도체 분야(RAM, NPU, 전력반도체 등)에 대한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 산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까지 반도체 기술 고도화를 위해 매년 최소 10조 원 이상의 연구개발 예산이 필요하다고 전망된다. 또한 반도체 산업에 특화된 고급 인재 확보 역시 중요한 과제다. 현재 국내 대학과 연구기관에서는 반도체 전공자를 충분히 배출하지 못하고 있으며, 업계 현장에서는 전문 인력 부족이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산학 협력을 강화하고, 장기적인 인재 육성 로드맵을 수립하는 것이 시급하다.
미래 대응 전략: 글로벌 협력과 시장 다변화
미중 경쟁은 한국에게 위기인 동시에 기회다. 한국 기업들은 특정 국가 의존도를 낮추고, 유럽, 동남아, 인도 등으로 공급망을 다변화해야 한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 TSMC는 애리조나와 일본 구마모토 등지에 생산라인을 구축하며 글로벌 공급망의 다극화를 시도하고 있다. 한국 또한 이러한 흐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한국 정부는 2023년 ‘반도체 초강대국 전략’을 통해 300조 원 규모의 민관 합동 투자를 계획하고 있으며, 용인에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할 방침이다. 이러한 산업 생태계 조성과 함께, 중소 반도체 장비·소재 기업 육성 및 글로벌 기업과의 기술 제휴도 확대해야 한다. 기술 독립과 협업이 병행되어야 진정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결론: 변화는 위기이자 새로운 도약의 기회
미중 반도체 경쟁이 격화되면서 한국 반도체 산업은 명백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이 상황을 기술 고도화, 글로벌 협력, 시장 확장이라는 기회로 전환할 수 있다면 오히려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정부와 민간 기업 모두 기술력 확보와 인재 양성, 산업 생태계 강화에 있어 더욱 체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세계는 지금 ‘반도체 전쟁’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이 경쟁에서 생존하고 리더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사고와 장기적 비전이 필요하다. 단기적 성과에 매몰되기보다는, 차세대 기술과 인재에 대한 투자로 미래를 준비하는 ‘디지털 주권’ 확보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